결국 올리비에 지루를 퇴장 당하게 만든 태클은, 사실 태클이 아니었습니다. 발이 살짝 위로 들렸던 것 뿐이고, 올리비에 지루는
카드의 색을 보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죠. 하지만 디지털 모션 캡쳐가 - 아주 조금 타이밍이 늦었을지라도 - 모든 50-50
태클을 강조하는 시대에, 그는 나가야만 했습니다. 지루는 공을 보고 가다가 미끄러졌고, 태클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대신 그는
느슨하게 굴러가는 공을 쫓으며 수비수들을 등지고 드래그백을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참고: 드래그백은 발바닥을 이용해 방향전환을
하는 개인기의 일종.]
사실 이 시점에서 보면, 이 날은 지루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패스는 형편 없었고, 하프타임때 그의 패스정확도는 고작 33%였죠.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을땐 55%까지 나아졌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경기내내 Arse2Mouse가
말했듯, 아스날은 스스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 - 혹은 지루의 매듭에 묶어버렸습니다. [참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리는 문제'를 가리킬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여기서는 Gordian
knot, Giroud knot으로 말장난처럼 쓰임]
올리비에 지루는 아스날의 유일한 스트라이커로써 많은 부담을 안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클럽으로써는 말도
안되는(incredible) 상황이고, 아르센 벵거의 흥미로운(curious) 도박인 셈이죠. 물론 벵거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뎀바바가 매물로 나왔을때 공격수를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뎀바바와 지루는 비슷한 유형의 선수이며, 지루가 금방 '그
레벨'에 도달할것이라고 말하며 그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벵거는 왜 -지루 본인 입으로도- 발전중이라고 말한
스트라이커를 고집하는 걸까요?
어쩌면 벵거는 지루가 2년전 프랑스 2부리그에서 뛸 때와, 아스날로의 이적을 성사시킨 몽펠리에 우승시즌동안 보여줬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스트라이커로써의 지루의 성향이 벵거가 그에게만 의존하도록 만들었을수도 있죠.
지루는 모든걸 다 할 수 있습니다(Giroud can do everything). 그는 피지컬이 엄청난 선수 치고 기술적이고, 공
키핑력도 상당하고, 다른 선수들과 연계도 가능하며, 라인사이의 공간도 잘 운용하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이건
아직도 서로에게 적응 중인 팀에게 비교적은 적은 위험 부담을 주죠. 그런 의미에서 지루는 팀이 밸런스를 맞추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적응기를 갖는 동안 충격을 흡수하는 보완재(buffer)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팀의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한, 벵거가 지루의 취약점을 눈감아주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 예를 들자면 팬들이 훨씬 낮은 포용력을 보이는
득점률 같은 것 말입니다. (지루는 원정골이 세골밖에 없습니다; 두골은 런던밖에서 넣었고, 한골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넣었죠.)
하지만 이것(득점력 부재)에
도 불구하고, 저는 벵거의 재임기간 내내 올리비에 지루처럼 심한 비판에 시달린 선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몽펠리에에게 2-0으로 승리하고 난뒤, 벵거는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그의 최고의 경기는 아니었다. 가끔 깊게 뛸 때 원하는 대로
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3-1로 역전승을 거뒀던 노위치전 이후 "후반에 굉장히 긍정적이고
좋은 영향력을 보이며 뛰었다"고 평가하기 전, "그는 [지루는] 전반전에 아주, 아주 평범했다"고 말하기도 했죠.
1-0으로 이겼던 풀럼전에서 우리는 -가끔 독이 되기도 하지만- 팀의 경기운영에 있어 지루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시간에
한명이 퇴장당하며 풀럼이 수적 열세에 몰렸음에도 팀은 수적 우위를 누리고 공을 움직이는 대신, 계속 지루를 통해 경기를 풀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은 계속 그에게서 튕겨나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갔고, 결과적으로는 열받는 경기력을 보여줬죠.
아스날은 올리비에 지루를 피봇으로 삼아 중원을 장악하며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했지만, 지루는 패스들이 성공하지 못하며 좌절스러운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아스날이 시즌 내내 경기해온 방식입니다: 지루를 역피봇(inverted pivot)으로 잡아 패스를 뿌리고, 그의
주변에서 생긴 공간을 이용해 뛰는 것말입니다. 지루가 칭찬만큼이나 비판을 많이 받았던 몽펠리에전 이후 벵거는 "지루는 오프사이드
라인에서 뛸 때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제공권이 있기 때문에 공중전에도 강하고, 타겟맨으로써 연계플레이를 할때도
환상적이다; 발로도 골을 넣을수 있고, 완성형 공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아스날이 이 전술로 성공을 거뒀을 때엔
보통 지루 바로 뒤에 뛰어주는 선수가 (direct running player) 있었고, 그 선수들이 빠른 원투패스 뒤 지루에게
낮은 크로스를 해줄 수 있었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아스날은 현재 7경기 무패기록을 세우고 있고, 이럴때에 꾸준히 뛰어준 선수를 비판하는 건 조금 예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지루 이외엔] 다른 옵션이 없었죠. 아스날의 어필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가정하에, 지루의 퇴장은 그의
시즌이 끝났다는 걸 의미하며, 다른 "후보"가 스트라이커 롤을 수행할 기회를 줄겁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판정이 번복될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팬들은 그 "후보"가 루카스 포돌스키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르비뉴가 될 공산이 더 크지만요.) 최근 벵거는 포돌스키를 공격
라인에서 제외시키고, 그 롤에 맞는 스피드를 갖게 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중입니다. 이건 인상적인 판단이 될수도 있으며, 포돌스키의
나이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벵거가 사랑하는- 9번 역할의 선수로 변신할때 약간의 즉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이번 일요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 정말 이 전술을 들고 나온다면, 아마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원래 목적에 근접한 모습이
되는겁니다. 사실 포돌스키도 지루와 함께 최전선에서 뛰는 부담을 나누는 역할을 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스날은 레드카드와 한경기
출장 징계에 대해 항소하는 편을 택했고, 이건 지루가 아스날에서 갖는 중요성과 함께 벵거가 이번 시즌 얼마나 위험 감수를
피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스날이 이번 시즌이 1/3정도 지났을때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벵거는 승점에 대한 걱정 없이 포돌스키를 중앙공격수로
세웠을겁니다. 만약 주말에 포돌스키를 기용한다면, 이번 시즌 내내 해온 판단들을 스스로 거스르는 결정이 되겠죠. 그런데 이게
챔피언스 리그라는 선물을 걸고 모험할 가치가 있는 위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