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이유로 전날밤 네다섯시간밖에 못잤지만 일단 불굴의 의지로 여덟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나름 과제도 마무리 짓고 제출까지 합니다. 유로스타는 기차이지만 그래도 나름 국경을 넘어가니 이미그레이션 등의 절차가 있기 때문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당일치기로 가는 거라 가방 하나만 들고 털레털레 기숙사를 나섭니다. 누가 보면 파리로 마실 나가는 줄 알겠지만 전 북런던 더비를 보러 일주일만에 또 런던에 갑니다 헤헤.
2.
파리 Gare du Nord (:북역)에 도착했습니다. 유로스타 출발을 위해 2층으로 올라갑니다. 논-EU 여권 소지자이니까 간단한 이미그레이션 서류를 작성하고 체크인을 통과합니다. 애플 월렛에 유로스타 티켓을 저장해 놓으면 귀찮게 티켓 프린트 같은걸 안해도 되고 편합니다!
프랑스쪽 출국 절차를 통과하고 (도장만 찍어주는데 경찰 아저씨가 비자만 세개가 붙은 제 여권을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아저씨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라는 표정을 지어줍니다.) 영국쪽 입국 심사를 받습니다.
이미그레이션 서류에 영국내 주소지를 안적어서 그랬는지 데이비드 간디 보급형처럼 생긴 오피서가 며칠 있을거야? 물어봅니다. 하루요! 오늘 밤에 돌아와요! 하니까 ???? 한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 오빠야 저 한국 좀 보내주세요 제발... 아녀, 파리로 와요, 하니까 파리에서 뭐하냐고 묻습니다. 학생인데요. 뭐 공부해?
오피서: 근데 뭐하는데 하루만 가?
나: 축구 보러요!
오피서: (오?) Yeah? 무슨 경기?
나: 아스날 토트넘이요 헤헤
오피서: (오오~) 너 아스날 팬이지?
나: 네!
오피서: (엄청 아쉬운 척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h we're not gonna get along then, but I'll stamp your passport.
나: Thank you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 흔한 잉국 오피서의 농담이었읍니다. 까딱하면 입국 못할뻔 했네요 (???)
두번 다 십오분을 넘기지 않지만 그래도 줄 서는 사람에 따라 대기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찍 오는게 낫습니다. 사실 EU보다 논EU줄이 짧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
대합실에 들어오면 아직 비몽사몽한 뇌를 깨우기 위해 크루아상과 커피를 사먹습니다. 엄청 비쌉니다 흥. 20분 무료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트위터를 합니다 (20분 지나도 4G로 계속합니다.) 그리고 한시 십삼분 유로스타 탑승. 영국시간 두시반 도착이니까 두시간동안 기차 안에서 기절합니다. USB 포트가 있기 때문에 대합실에서 트위터하며 60%까지 떨어진 아이폰 배터리를 충전하며 노래를 듣습니다. (이건 기차 바이 기차입니다)
3.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했습니다! 나름 한번 와봤다고 자신 있게 지하철을 타러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합니다. 어차피 오늘 런던은 아스날역<->킹스크로스/세인트 판크라스만 할거니까 왕복 티켓만 구입합니다. 런던 교통비는 살인적인 것 같습니다. 7파운드라니!?!
피카딜리 라인을 타면 3정거장만에 아스날 역에 도착합니다. 어차피 이미 구너들이 빨간/하얀색 목도리를 두르고 에미레이츠로 가고 있기 때문에 놓칠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티켓을 픽업하고 에미레이츠로 들어가봅니다! (티켓 픽업하는 곳도 여러군데 있던데 멤버십 티켓 픽업은 줄도 없고 저 혼자뿐이더라구요 애쉬버튼 짱짱맨!)
4.
영국 경기장은 경기장에서 알코올이 들어있는 맥주를 판다니 문화컬쳐였읍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었는데 핫도그도 맛있게 먹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폰으로 찍어서 화질은 엉망이지만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올리려고 꺼내보니 손흥민이 보입니다 엇 이 팀이 아닌데?
애쉬버튼을 통해 구한 자리는 그라운드가 한눈에 보이는 명당입니다.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고 있습니다. 킥오프전에는 world war 때 참전한 베테랑들을 위한 묵념도 있었습니다.
5.
경기는 결국 1-1로 비겼죠, 네, 음… 뭐 첫 직관 첫 더비인데 경기력이 너무 엉망이었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너무 못해서 즐겁게ㅋㅋㅋㅋㅋ 웃으면서ㅋㅋㅋㅋㅋ 보고 왔습니다! 그 경기력으로 안 진게 다행이죠 허허 후반에 정말 헛웃음이 나오던데요 음. 뜬금골도 너무 웃겼고 말입니다!
뭐 무려 첫 직관을 더비로 시작하고 나름 흥미니도 보고 오고 즐거웠습니다! 더비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에미레이츠에서 응원이 훨씬 다이나믹하더라구요. 그 유명한 위 헤잍 토트넘 챈트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신기하고 그랬습니다. 원래 챈트의 꽃은 헤잍 챈트 아니던가요 (헤헤)
제 옆의 아이리시 아저씨는 제가 신기한지 먼저 말을 붙여오시던데 매년 최소한 한번씩은 직관을 위해 에미레이츠로 오신다고 합니다. 벌써 삼십년이 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대단하셔 역시 덕중덕은 양덕이라더니...
- 술은 경기장 좌석으로 반입금지입니다. 컨세션 스탠드에서 미리미리 드시고 입장하셔요
- 날씨가 이때 유난히 따뜻해서 딱히 추운지는 몰랐지만 앞으로는 바람 많이 맞을 것 같은 (…) 위치입니다. 혹시 겨울철/초봄에 직관 가시는 분들은 옷 따뜻하게 입고 가셔요
- 경기가 끝나고 아스날 역이 닫혔더라구요. 10-15분쯤 걷고 나서 다음 역에서 튜브 탔던걸로 기억합니다!